원데이 인 홍대
- 깜악귀
1. P.M 02:00~
오후 2시, 늦게 일어났다. 붕가붕가 레코드의 곰사장이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그보다 늦게 일어났을 터다. “책 나왔어요, 볼래요?” “그래” 최근에 발매된 붕가붕가 레코드의 책 -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에는 그들과 대학시절부터 같이 다닌 내가 앞부분을 썼다. 그 책이 막 형태가 되어 나왔다는 것이다. 일부분을 쓴 사람으로서 가서 펼쳐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곰사장은 상수역 근방의 카페 ‘Mother Moon’에 있다고 했다. 어딘지 몰라 물어서 찾아간다. 찾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2년 전만 해도 그런 곳까지 카페가 생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본래 홍대라는 구역은 인디 밴드가 공연하는 라이브 클럽이 있는 곳이고, 그 후에는 ‘춤추는’ 클럽이 있는 곳이었다. 옷가게, 미대 입시 학원, 출판사나 디자인 사무실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홍대만의 특징이 되기엔 어려웠고 결국 이 두 ‘클럽’의 분포가 ‘홍대 문화’의 면적을 규정했다. 홍대는 곧 ‘클럽’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카페가 어디까지 퍼져 있는가가 홍대라는 영역을 규정하고 있다.
홍대라는 영토는 보통 홍대의 정문으로부터 연남동의 청기와 주유소로 내려가는 메인 도로를 기점으로 좌우로 나누어 구분한다. 이 좌우를 농담 삼아 ‘이스트사이드’ ‘웨스트사이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은 동서가 아니라 북동, 남서지만) 이스트사이드에는 라이브 클럽 및 삽겹살 집, 웨스트사이드에는 하우스 or 힙합 클럽이 들어섰다. 카페는 이스트와 웨스트의 양쪽에 고루 분포되어 있지만 그 문화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스트사이드에는 1인 경영의, 인테리어 등도 주인이 직접 한 작은 카페나 바가 많고 웨스트사이드에는 그에 비해 자본이 개입된 카페와 바가 있는 편이다. 이런 구분이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있긴 하지만.
‘Mother Moon'은 웨스트사이드의 끝에 있다. 그곳에는 라이브 클럽도, 댄스 클럽도 없으며 카페와 와인바와 간단한 먹거리 장사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곳도 이제 홍대의 일부라고 여겨지고 있다. 이 1년 동안 홍대는 서부를 개척한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이런 카페의 번성은 곧 끝나리라고 생각했다. “홍대의 인구가 이렇게 많은 커피를 마실 수 있을 리 없잖아” 틀린 생각이었다. 카페가 많아지자 전에는 홍대에 올 이유가 없었던 이들까지 홍대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도로 면적이 부족하면 고가도로와 지하도로가 생긴다는 식으로, 다른 곳이라면 상가가 성립될 수 없는 공간에 카페가 임대되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던 주택이 개조되고 조금 클 뿐인 차고가 간단한 공사를 통해 점포가 되었다. 그래서 홍대의 상가는 이제 입체적인 구조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오후와 저녁까지 영업하는 카페가 많아지자 와인바, 일식 주점 등 밤을 담당하는 소규모의 주인의 개성을 반영한 공간도 생겨났다. 현재 홍대는 몇 가지의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런 레이어는 무늬가 있는 반투명한 종이와 같아서 모두를 겹쳐보아야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 보인다. 그 레이어는 대체로 이렇다.
① 옷가게 (비싸진 않지만 개성적인 옷들) ② 라이브 클럽 (밴드 문화의 요람) ③ 댄스 클럽 (금요일과 토요일의 지배자) ④ 카페 (지금 홍대의 패왕) ⑤ 와인바 일식집 등 개성적인 주점 (신흥세력)
어떤 사람은 댄스 클럽과 맞물린 카페와 주점의 번성을 일종의 상업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홍대는 이제 많이 상업화되었어. 예전의 홍대가 아니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홍대에서 카페나 바를 내는,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상업적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물론 카페나 바는 일종의 비즈니스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서 비즈니스는 존재의 표현이며 증명에 다름 아니다. 내가 아는 종류의 ‘문화계’ 인간들은 대체로 홍대에 카페 하나 내고 싶어하는데, 하나같이 ‘수익에 신경쓰지 않고’ 그냥 나만의 공간으로서 운영하고 싶어한다. 사실 돈을 벌려면 펀드에 열중하거나 큰 자본을 끌어들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사람들이 홍대에서 ‘카페’를 내고 싶어하는 것은 내가 보기엔 상업이 어쩌구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욕망의 문제다. 그런 측면에서는 밴드를 하고 싶다는 것이나 카페를 하고 싶다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 먹고 살 수 있건 없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살고 싶어. 밴드를 하고 싶어.
- 수익에는 큰 신경쓰지 않고 카페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네.
그래서 ‘서부’의 신개척지에 생겨난 새 카페에 붕가붕가 레코드의 관계자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어찌 보면 자연스운 모습인지도. 새로 나온 책이 한 켠에 쌓여져 있다. 새우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오후의 아침으로 하고 책을 펼쳐보았다.
2. P.M 03:30~
책에서 나는 나를 비롯한 일련의 동네 아이들이 어떻게 대학에서 만나 악기를 들고 공연을 시작, 종국에는 홍대로 진출했는지를 썼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진출자’ 중 ‘브로콜리 너마저’와 ‘장기하와 얼굴들’은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에서 비롯된 책의 출판이지만 책에는 다른 이야기가 좀 더 많이 쓰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시절, 나는 통기타로 노래를 만들며 홍대를 갈망했다. “언젠가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말겠어.” 무리를 모아 밴드를 만들고 결국은 클럽 ‘재머스’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3년 전에는 자취방을 홍대로 옮겼다. 한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 내 방은 와우공원 근처, 라이브 공간인 쌈지스페이스 위쪽이다. 복덕방 주인이 이 방을 소개시켜줬을 때 나는 홍대를 내려다보는 그 입지에 열광했다. 반지하여서 멋진 야경 따위는 보이지 않지만 풍수로는 홍대를 베게삼아 잠드는 위치다. 아파트 건물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눈 아래 홍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메인스트리트가 나온다. “이 공간은 내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자신이 홍대의 원주민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몸은 본래 홍대에 살던 사람이라는 식이다. 누가 홍대 인디 문화에 대해 호들갑을 떨면 시니컬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며 - “홍대는 홍대일 뿐” - 홍대에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거주민으로서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크리스피 도넛’이 들어왔을 때도, ‘스타벅스’가 두 개나 들어왔을 때도 환영하진 않았고 카페가 너무 많아지기 시작했을 때도 “콩 짜낸 물 파는 가게가 왜 이렇게 많이 들어서는 거야!”하고 짜증을 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딱히 인디언은 아니며 그들이 홍대를 어지럽히는 백인인 것도 아니다. 나도, 수많은 카페의 주인들도, 붕가붕가 레코드의 아이들도 결국에는 이민자에 불과하며 홍대 바깥에서는 그저 이상하게만 보일 외래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안고 이리로 왔다. 올 데가 여기 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홍대는 일종의 문화적 아메리카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피부색이 아니라 자신이 획득한 문화적 정체성에 따라 이런저런 일을 벌인다. 문화적 이탈리안은 카페를, 프렌치는 와인바를, 라티노들은 댄스 클럽을, 브리티쉬는 밴드를, 중국계는 먹거리 장사를 한다. 서로 차별할 것은 없다.
기하가 홍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이라는 식으로 TV와 신문을 장식할 때 (기하 잘못은 아니지만) 그보다 오래 홍대를 종횡해 왔던 밴드들은 조금 어이없어 했을지 모른다. 그야 기하는 정통적인 홍대 뮤지션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드럭(drug)’ 출신이면 정통이란 말인가? 크라잉넛 형들은 본적이 홍대로 되어 있기라도 한가? 일찍 오고 늦게 온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모두가 굴러온 돌에 불과하지 않은가. 예전에 본 어떤 미드의 대사가 떠오른다. 양식장이 천연어종을 말살시키고 있다고 환경운동 단체의 변호사가 고발하자 반대편의 변호사가 외친다. “양식장이 뭐 어쨌다고요. 솔직히 말해 우리 아메리카 자체가 거대한 양식 어장 아닙니까!” 홍대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이곳 전부가 한국에서는 키우기 힘든 종들을 재배하기 위한 양식장인 것이다.
생각에 빠져 있는데, 곰사장이 뻐끔거리며 말을 건다.
“책은 다 읽었나? 어때?”
“내가 쓴 대목이 이상한 것 같아. 너가 쓴 대목은 괜찮은 것 같군.”
“… 형이 쓴 대목은 괜찮은데. 내가 쓴 대목은 도저히 못 읽겠다.”
우리는 애써 아쉬움을 접고 레이블 공연의 세부사항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다. 각 밴드 공연의 중간에 영상을 넣으면 어떻겠느냐니, 영상은 케이블 방송의 모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시나리오면 좋겠다느니, 앨범 녹음 전에 팬들에게 선투자를 받으면 어떻겠냐느니 하는 이야기. 한편 곰사장은 출판사에서 출판 마케팅의 일환으로 서점을 돌며 싸인회 및 대담을 기획 중이라고 말한다. 나도 거기 나가야 한단다. 맙소사, 내가 왜 그런 자리에 나가야 한단 말인가.
“기하나 덕원(브로콜리 너마저)이가 나가는 걸로 충분하잖아. 내가 거기 나가는 건 위치가 묘한 것 같다.”
“그래도 저자잖아.”
“책의 일부만 썼을 뿐이고 사실 내가 딱히 붕가붕가 레코드 관계자도 아니잖아.”
“이봐요, 출판 인세의 일부를 받잖아?”
할 말이 없다. 돈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나가면 되잖아… 젠장.” 곰사장이 달래듯 커피와 샌드위치 값을 치른다. 우리는 헤어지고 나는 마감에 임박한 이 글을 쓰기 위해 또 다른 카페를 찾는다. 나는 집에서는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없는 체질이다. 어딘가의 카페에 들어가야 한다. 물론 돈이 아까워죽겠지만 일이 닥쳐오면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홍대 카페의 특징 중 하나는 대체로 무선 인터넷이 보장된다는 것인데 이는 다른 지역, 이를테면 신사동 가로수길 카페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노트북을 들고 이런저런 작업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저기는 파워맥 최산형이고 저쪽은 도시바 넷북, 저쪽은 소니 바이오. 노트북이 많다는 것은 직장인 보다 대학생이나 프리랜서가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기 있는 사람은 방송 작가, 저기 있는 사람은 디자이너. 나도 따지고 보면 프리랜서다. 좋아서 그런 건 아니지만.
겨우 2페이지인가 썼는데 문자가 온다.
[OOO랑 홍대 클럽에 가려고 하는데… 갈래?]
[난 오늘 마감이라… 잘 놀아라]
3 P.M 09:23~
집중력의 한계에 달할 때까지 글을 쓰다가 밖에 나오니 어둑어둑하다. 10, 11시쯤 되면 클럽을 목적으로 홍대로 오는 사람들이 거리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날이 추워져서 여성들의 노출도는 크게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볼 만한 차림들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클럽에 잘 가지 않는다. 나는 힙합 음악 취향이 아닌데 홍대의 클럽은 어느새 힙합으로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홍대는 이런 클럽들을 거점으로 다종의 외국인이 국내인과 어울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얼마 전 친구를 따라 클럽에 갔을 때는 좋은 구경을 했다. 외국인 남성과 한국 여성의 끈적끈적한 탠덤이 그것이었다. 큰 댄스 클럽 말고 작은 술집 겸 클럽에서 더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마침 구석 자리의 소파에는 외국인과 키스에 열중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 물론 전혀 나쁜 일이 아니고 눈에 좋은 구경거리지만 이런 의문이 들긴 한다. 만일 내국인 커플이라면, 남들 보는 앞에서 그렇게 놀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난 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외국인 커플이 그렇게 놀고 있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반드시 외국 남성과 한국 여성인 커플만 이런 모습을 타인에게 내보일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이 서로에게 이국성을 느끼는 커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국성은 우리를 일시적으로나마 해방시키는 힘을 가진다.
그리고 또 하나. 이것은 강남권 일부를 제외하면 홍대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는 것. 종로나 안국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홍대는 일종의 ‘이국’이고 우리는 여기의 이민자로서 ‘이국인’으로 행세하는 것을 허용받는다. 혹은 외부의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를 열심히 이쪽의 사람들에게 덧씌우려 하거나.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친구들이 보낸 문자가 있다. 클럽 ‘Ska2’로 간다고 한다. 나는 문자를 무시하고 다른 카페를 찾아 노트북 가방을 메고 헤멘다. 목적한 카페로 가는 길에 <마콘도>라는 바의 간판이 보인다. 대부분은 그냥 지나치는 간판이겠지만 나는 안다. 이곳은 1997년에 오픈한, 한국 최초의 살사바라는 것을.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홍대는 ‘살사(salsa)’ 댄스의 중요 지역이다. 살사 댄스는 쿠바에서 기원해서 미국화된 커플 댄스로 홍대 인근에는 다수의 살사바가 운집해 있고 직장인들은 퇴근과 함께 셔츠를 풀어헤치고 이 자유분방한 라틴 댄스를 즐긴다. 이것은 홍대의 또 다른 얼굴이고 위에서 미처 언급하지 않은 은밀한 레이어 중 하나다. 살사 역시 홍대로 이주해온 이국의 문화로, 그런 점에서 홍대는 결국 이주와 혼합의 공간이 아닐지. 내가 모르는 그 무엇이 언제 이 공간에 흘러들어온다 해도 놀랄 것은 없다.
목적지, ‘한 잔의 룰루랄라’는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카페다. 사실 이 카페 주인 중 한 명은 서울 외곽에서 비교적 멀쩡하게 좋은 술집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홍대로 이주해오라고 열심히 유혹했다. “중앙으로 진출하고 싶지 않아요? 홍대에서 승부를 봐요!” 그는 동업자를 찾아 공동 사장의 형태로 홍대에 카페를 열었다. 음식점을 하지 않은 이유는 “홍대=카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공동 사장을 그만두었다. 지금은 남은 사장 혼자서 꾸려가고 있다. 이 사람은 1년 후에 해외로 이주할 계획을 하고 있어서, 그 때는 아마 권리금을 받고 이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터다. 하지만 이곳에 자신만의 작은 카페를 열고 싶어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므로 누군가가 또 특이한 카페를 오픈할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2층의 입구 근처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돌린다. 단체손님이 있는 모양이다. 주인장과 적당히 잡담도 하고 글도 쓸 요량이었지만 입구에서 발길을 돌린다. 이렇게 된 김에 다른 밤샘 카페를 찾아야 한다. 카페에서 카페로, 한 마리 양식어처럼 유영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짓은 그만 두도록 하자. 조금만 더 쓰다가 나의 요람이 있는 와우산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홍대를 베게 삼아 잠이 든다.
20091020 in 홍대
<상상마당 단행본 '홍대의 하루' 용 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