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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이야기부터 해보자. 여기 지금과 거의 비슷하지만 한 가지 요소만 다른, 가상의 일본이 있다. 그 한 가지 요소는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 속에 '미디어 양화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것. 이 법안으로 인해 '미디어 양화 위원회'라는 국가 기관에서 서적에 대한 검열을 합법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양화 위원회의 판단에 의해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판단되는 서적, 영상작품, 음악작품이 단속된다. 모든 판단 기준은 양화 위원회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되며 심지어 저항하는 자에게 무력의 행사까지 허용되었다. 저항하는 자에게 자체적인 군사력을 동원하여 검열을 강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적을 사는 사람에 대한 죄는 묻지 않으므로 일반 시민에게 무력이 행사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이렇게 독자에게 판단될 기회조차 제공되지 못하고 단속된 책의 피해는 고스란히 서점과 출판사에 넘어가고, 덕분에 책 값은 현행의 두배로 뛰었다. 그러나 시민의 도서관 이용은 더욱 활발해졌다.

도서관은 양화 위원회의 활동에 반하여 지방자치제에 기대어 '도서관 자유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도서관을 검열에서 자유로운 영토로 놓고자 하는 자치법안으로, 서점에서 몰수당하더라도 도서관에서만은 원하는 책을 열람할 수 있게 하자는 선언이다. 이 의지를 지키기 위해 도서관은 자치적인 경비대를 지니게 된다. 그 이전에는 양화 특무 기관에서 도서관을 무력으로 습격하여 검열 대상 서책을 파괴하더라도 경찰의 출동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동안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대규모의 도서가 불에 탄 사건이 발생하자 도서관은 자체적인 경비분과, '방위원'을 창설한다.

이제 검열 대상이 된 서적이 도서관에 운반되는 동안 양화 특무기관은 운송차량을 습격하고 도서대는 이를 지켜내는 장면이 펼쳐진다. 단순한 실갱이가 아니라 실탄이 오가는 국지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미풍양속을 해치는 도서를 열람하게 할 수 없다"는 쪽과 "도서관은 자료수집의 자유를 지니며 이용자의 열람권을 보장한다"는, 책을 사이에 둔 전쟁이다. 형식적인 전쟁이 아니어서, 당연히 사상자가 나온다. 민간인을 휘말려들지 않게 하고 있지만 사실상 일종의 내전상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확 끌리는 설정이 아닐까. 책에 대한 검열 따위 있을 수 없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고, 책에서 말하는 대로 "호러 소설을 읽는 녀석보다 책을 좋아하는 주제에 어른이 권하는 추천 도서만 읽는 녀석이 더 무서워"라는 말에 동감한다면 더 끌려들 터.

"도서관의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우리들은 단결해서 끝까지 자유를 지킨다" 뭐 그런 거다. 일본이 실제로 미풍양속을 근거로 만화 및 서적을 심하게 검열했던 역사가 있어서 상당히 근거를 지니는 설정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해도 대체로의 대중은 별 신경쓰지 않고 살고 있다- 는 설정도 나름 현실적이다. 한국에 전례가 없었던 일이 아니어서 공감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는 일본 학생운동의 로망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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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할 수 있는 설정 이야기를 꽤 했는데, 이 소설에 대체역사물(SF) + 밀리터리물의 성격이 있고 '도서 검열과 열람권을 둘러싼' 일본의 현실 정치적인 이야기(물론 가상이지만)가 꽤나 설득력있게 전개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을 뿐, 소설은 캐릭터를 중심으로 경쾌하고 빠른 템포로, 부담 없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니 안심할 것.  

여성치고는 키가 크고 체력이 좋은 이쿠는 안전한 사무분과가 아닌 전투분과를 지망했다. 그 이유는 바로 중학생 시절, 양화 대원에게 빼앗길 뻔한 그림책을 한 도서대원이 왕자님처럼 나타나서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이 때의 순정적인 기억을 잊지 못한 이쿠는 자신도 그 대원처럼 '책을 지켜주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도서부대에 들어가면 그 왕자님을 한번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눈 앞에 있는 건 자기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꼬맹이' 귀신 교관 도조... 더구나 사사건건 걸고 넘어지는 엘리트 출신 동기와의 충돌... 도서관 내의 정치적 파벌의 등장...

<도서관 전쟁>은 무심코 집어들었다 큰 재미를 안겨준 책이다. 라이트 노벨로 분류되어 있고 실제로 애니메이션도 출시되어 있으니까 통념상 틀린 분류는 아니겠지만 사실 소설은 그보다는 드라마 소설이라는 쪽에 보다 가깝다. 작가의 말대로 9회로 한 시즌이 끝나는 연속극을 보는 듯한 전개와 재미를 안겨준다. 일본 드라마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춤추는 대수사선> 같은 수사물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설정만으로는 형사물은 아니고 밀리터리물에 가깝지만 군사부대의 전쟁 이야기에 집중되는 것은 아니다. 이쿠가 속한 '도서특수부대'는 긴급시가 아닌 평소에는 일반 도서관원의 업무를 처리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사무직, 유사시에는 전투원에다 관료제의 구속 안에 놓이는 공무원이 겹쳐진 형사라는 이미지에 더 유사할 듯하다. 여기에 도서관 내 파벌과 문부성, 법무성, 양화 위원회가 얽힌 정보전까지 겹쳐지며 흥미진진하다.

더하여 '도서관 전쟁' 시리즈는 심지어 '키다리 아저씨' 류의 로맨스 소설의 속내를 가지고 있다. 어디가 로맨스 요소인지는 스포일에 해당되어서 차마 말을 못하겠지만 좌우간 '로맨스가 빠지면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기 마련인' TV 드라마의 이야기에 속성상 상당히 가깝다. 한국인의 미니시리즈 감성으로 보아도 상당히 쉬이 읽힐 듯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반적인 라이트노벨보다 훨씬 덜 마니악하고 일반 대중에게 호소할 만한 작품이다. 호감을 얻을 만한 캐릭터들을 잔뜩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하여튼 설명하기보다 직접 읽고 재미를 느끼기에 더 좋은 책이니 일독을 권하고 싶다. 현재 <도서관 전쟁>, <도서관 내란>이 한국에 출간되었고 이제 <도서관 위기> <도서관 혁명> 두 권이 남았다. 나머지 두 권도 곧 번역되지 않을까 싶다. 굉장히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엔터테인먼트 작품이고, 마음을 뒤흔드는 포인트도 곧으면서 불쾌하지 않다. 즐기기 위한 소설은 이래야 한다- 고 할까.

이건 좀 다른 이야기..

2008/10/09 06:13 2008/10/09 06:13
article 2008/10/09 06:13 by 깜악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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