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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1년 전에 출간된 《소라닌》이라는 2권짜리 작품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국내에서도 작은 센세이션을 일으킨 《소라닌》은 청춘군상들의 희망과 좌절을 현실적인 톤으로 그려내어 각광을 받았다. ‘소라닌’은 감자의 싹에 있는 독성 물질을 의미하는 말로, 만화 속 인물들이 결성한 밴드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소라닌’이라는 용어는 싹을 틔워봤자 보잘 것 없기는 마찬가지인 일본 20대의 삶에 대한 작가의 은유이기도 하다.

아사노 이니오는 희망 없고 변화 없이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프리터) 일본 청춘 군상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묘사로 이름이 높은 작가다. 《소라닌》에서 보여준 이런 힘은 《월간 선데이GX》에 2002~2004년 연재한 단편을 묶은 《이 멋진 세계》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아니, 오히려 그의 작가적 역량은 단편 쪽에서 더욱 돋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아사노 이니오에게는 구도에서 완전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뛰어난 공간 센스, 군더더기 없는 인물 묘사 능력이 있다. 미장센이나 몽타쥬 등, 대사나 지문에 의존하지 않고 ‘보여주는’ 기법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으며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배합하는 센스도 있다. 이 모두가 장편보다는 단편에 적합한 능력이다. 하지만 《이 멋진 세계》가 보여주는 더 중요한 특성은 한 인물에 대한 지나친 감정이입을 방지하여 이야기가 식상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세련된 장치다.

18개 단편으로 템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그런 장치의 일환이다. 이 작품집의 단편들은 등장인물을 다수 공유함으로서 서로 어깨걸이를 하고 있다. 우리는 1권의 단편〈반 더 포겔〉에서 밴드를 하겠다고 직장을 그만둔 호리타의 향방을 2권의 〈푸른 하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호리타의 여자친구 마리코는 단순한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단편 〈멋진 세상〉에서는 마리코를 스쳐 지나가는 마리코 전 남자친구의 시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등장인물의 삶은 모두 이리저리 얽혀 있는데, 이러한 구성 덕에 독자는 한 두 캐릭터가 아닌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다중적인 시점에서 관찰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는 개별 단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두 권짜리 단편집을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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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삶에 결국 별다른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자기 인생의 초라함을 이겨낸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꿈과 희망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자신이 사회 속에서 얼마나 초라하고 가능성이 없는지 깨닫고 나면, 꿈은 순식간에 자신의 목을 조르는 독으로 변화한다. 결국 《이 멋진 세계》가 전달하는 메세지는 《소라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단편집에는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체험하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사이 자기 삶의 무게를 조금쯤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 [판타스틱] 2008년 3월호 게재

2008/02/15 15:59 2008/02/15 15:59
article 2008/02/15 15:59 by 깜악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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